베트남 깟띠엔 국립공원 프리 더 베어스 생츄어리
Vietnam Cat Tien National Park Free the Bears Sanctuary
베트남 깟띠엔 국립공원 프리 더 베어스 곰 생츄어리
삼계절 노동을 마치고 동면을 앞둔 상황에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다. 한국에 곰 생츄어리를 만들고자 하는데 함께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연락은 준 사람은 곧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답사를 간다고 했다.
겨울동안 야생에서 생존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던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를 따라 비행기에 탑승했다. 생츄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곰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곰들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평생 좁은 공간에서 착취 당하며 학대받던 곰들이 구조되어 더 나은 삶을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지난 11월 17일, 인천에서 샤먼을 경유해 호찌민에 착륙했다. 무덥고 축축한 밤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이튿날, 슬리핑 버스를 타고 4시간 정도 누워서 달려 깟띠엔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내렸다. 관계자와 통화가 되지 않아 길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던 오토바이꾼에게 넘어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고 온몸이 젖는 가운데 마음은 들떴다. 중간 마을에 내리자 개들이 무심히 반기며 다가온다. 주민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바로 앞에 황토빛 강물이 콸콸콸 흐르고 한국에서 왔음직한 제비 수십 마리가 낮게 날고 있었다.
숙소에서 바라본 생츄어리. 강이 가로지르고 있다.
강 맞은 편 산 속 깊은 곳에 곰 생츄어리가 있다고 한다. 밤이 되자 서늘한 적막을 깨는 '깻 공- 깻 공- (점점 낮아지고 작아지는 음색으로)' 게코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숙소 앞에는 두꺼비가, 안에는 개구리가 돌아다니며 불빛에 모여든 벌레를 낼름낼름 흡입한다.
그렇게 각종 동물들과 한 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동틀 무렵 우주의 소음 같은 희한한 소리에 불현듯 잠에서 깼다. 새 울음소리인 줄 알았는데 긴팔원숭이들의 떼창이란다. 한참을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신나서 동행과 같이 떼창을 했다. 마치 우리가 긴팔원숭이가 된 것 같았다.
깟띠엔 국립공원의 긴팔원숭이들
프리 더 베어스 베트남, 캄보디아 총괄인 네브와 베트남 담당자인 욤이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배를 타고 5분 정도 강을 건너 닿은 곳에 국립공원 사무실이 있었다. 근처에 2008년 처음에 지은 시설이 있고, 2017년에 새로 지은 시설은 그곳에서 더 들어간다. 오토바이를 타고 한참을 달려 베어하우스에 도착했다.
곰 키퍼들이 숲속 여기저기에 던져준 아침식사를 찾느라 곰들은 분주해 보였다. 펜스 너머의 태양곰 한 마리가 우리에게 점점 다가온다.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조금은 긴장되었다. 그는 킁킁대며 엉거주춤 일어서서 우리와 눈을 맞추다가 자기 할 일을 하러 갔다. 우리도 각종 시설을 꼼꼼하게 둘러보며 설명을 들었다.
새로 지은 시설은 친환경적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태양광과 축전지로 펜스에 24시간 전기를 공급하고, 식물로 그늘을 만들어 온도를 조절하고, 상수와 배수 시설을 갖춘 상태에서 지하수를 끌어 쓰고, 돌을 채워 넣은 철조망으로 벽을 세워 바람을 통하게 한다.
곰들이 내실에 있는 동안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작은 정원도 만들어 두는 등 곰에게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역력했다. 사다리를 타고 옥상에 올라가니 사방으로 방사장을 볼 수 있었다.
친환경적으로 지어진 베어하우스 내부
방사장은 누전 방지를 위해 풀이 제거된 펜스 주변을 제외하면 숲이 우거져 있어 자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최대한 환경을 유지하며 방사장을 꾸몄다. 곰이 작정하고 어딘가에 숨으면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먹이를 먹으러 나오기는 하겠지만.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 이곳은 곰이 자유롭게 하우스와 방사장을 드나들 수 있다는데, 혹시 숲에서 겨울잠을 자는 개체도 있지 않을까. 반달가슴곰 가운데 먹이를 줄이지 않아도 겨울잠을 기억하고 일주일씩 숙면하는 개체들도 있다고 한다. 곰이 겨울잠을 기억한다는 말이 마음에 계속 맴돌았다.
편안한 포즈로 먹이활동 중인 반달가슴곰
다음 베어하우스로 이동하는 길. 숲길을 걷는데 갑자기 발가락 사이에 뭔가가 꿈틀거린다. 신발을 벗었더니 시커먼 뭔가가 붙어 있다. 거머리다. 핏줄이 지나가는 부위에 빨판을 흡착하고 피를 쪽쪽 빨아대고 있는 것을 실제로 보니 놀라웠다.
손가락으로 떼어내려 했으나 이번엔 손가락에 빨판을 붙인다. 동그랗게 비벼말아 땅바닥에 던졌더니 자벌레처럼 기어서 마구 달려온다. 다른 거머리들도 부리나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마치 좀비 떼의 습격을 받는 기분. 빨리지 않으려면 빠르게 이동하자. 찰거머리라는 단어가 왜 생겼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루종일 들러붙었던 거머리. 피를 먹고 빵빵해진 모습.
베어하우스 담벼락을 기어올라 옥상에 올랐다. 그곳에서 바라본 방사장은 끝이 어딘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저 멀리 숲 속에 곰을 위해 지어놓은 나무 구조물이 보였다. 수영장, 데크, 드럼통 등 최소한의 행동풍부화 시설이 있고 나머지는 다 자연적인 느낌이었다.
곰들은 각자 풀을 뜯거나 간식을 찾거나 수영을 하거나 그늘에 늘어지게 누워 있었다. 대체로 편안해 보였지만 그 중에 한 마리가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정형행동을 시작하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베어하우스 옥상에서 바라본 숲이 우거진 방사장
이곳의 곰들은 구조된 후에 계류장에서 질병검사와 적응훈련을 한 뒤, 천천히 합사훈련을 받는다. 철저한 식단 관리와 행동풍부화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서서히 회복하지만 계속 정형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십수년간 갇혀 있던 곳보다 훨씬 넓은 생츄어리에 살면서도 여전히 머리를 흔드는 곰에게서 아픈 과거가 보였다. 사실 야생에 돌아갈 수 없기에 지금도 커다란 울타리에 갇혀 있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가 좀 더 평안해지기를. 이곳에서 남은 생을 잘 살다 가기를 바랐다.
베어하우스 그늘에서 늘어지게 자는 곰들
곰을 관찰하다가 문득, 키퍼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시설과 식단을 관리하고, 곰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고, 어떻게 해야 곰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꾸준히 연구하고,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침착하게 대처해야 한다.
한국에 곰 생츄어리가 생기고 구조된 사육곰이 들어온다면,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생츄어리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머리 속에 구체적인 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거머리에게 뜯긴 흔적. 다음부터는 양말을 신자.
갑자기 또 발가락 사이가 간지러워 신을 벗으니 거머리 넷이 여기저기 붙어서 신나게 피를 빨고 있다. 별 느낌도 없고 떼어내는 것이 더 귀찮았던 나는 그들을 발가락 사이에 끼운 채로 걸었는데 그러다보니 그들이 뭉개져 죽거나 떨어져나간 자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실컷 피를 먹고 빵빵해진 거머리를 차마 죽일 수가 없어 손가락으로 튕겨서 보내주었다.
동행이 기지개를 켜는데 아뿔싸, 겨드랑이에 거머리가 꿈틀대고 있는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만져도 되냐고 물을 새도 없이 반사적으로 거머리를 잡아서 떼어냈다. 어떻게 거기까지. 곰들은 어떤지 궁금해서 욤에게 물어보니, 곰 피부가 두꺼워서 거머리가 붙지는 않는다고 한다.
숲을 그대로 유지한 방사장
새로 짓고 있는 시설도 둘러보았다. 네브에게 물어보니, 드론을 띄워 지형을 정찰한 뒤 GPS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건물을 세울 곳과 울타리를 설치할 곳의 나무 정도만 최소한으로 베어낸다고 한다. 곰 생츄어리를 조성할 때 이런 요소를 모두 고려하여 환경파괴를 최소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밀어버리고 나무를 다시 심는 식의 방법은 채택하지 않으리라.
생츄어리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물었더니 베트남 정부가 프리 더 베어스와 계약하여 땅을 무료로 임대해주고, 단체는 일정 기간 프로젝트를 맡아서 운영한다고 했다. 정부가 점점 협조적이 되었고, 곰을 구조하러 갈 때 같이 가서 압수해 준다고 한다. 한없이 부러워졌다.
서로 가까워진 곰들. 편안히 지내고 있었다.
한국은 1981년에 정부가 잘못 시작한 일을 여태껏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결자해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사육곰이 모두 중성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죽을 때까지 좁은 우리에 갇혀서 사는 것이 과연 사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생츄어리가 생기지 않는 이상 전수 안락사하고 곰 농장을 종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치적 부담의 문제로 안락사가 어려운 모양이다.
이렇게 인간들이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는 사이에 곰들은 실질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생츄어리를 만들어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사는 것처럼 살게 해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지.
베트남 정부와 프리 더 베어스의 협업을 보면서, 생츄어리에 살고 있는 곰들의 비교적 편안한 상태를 보면서, 답사 전에 반신반의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생츄어리가 생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무조건적인 안락사가 답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영원 같은 고통 속에 살던 곰들이 철창을 벗어나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베트남 깟띠엔 국립공원 프리 더 베어스 생츄어리
Vietnam Cat Tien National Park Free the Bears Sanctuary
베트남 깟띠엔 국립공원 프리 더 베어스 곰 생츄어리
삼계절 노동을 마치고 동면을 앞둔 상황에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다. 한국에 곰 생츄어리를 만들고자 하는데 함께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연락은 준 사람은 곧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답사를 간다고 했다.
겨울동안 야생에서 생존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던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를 따라 비행기에 탑승했다. 생츄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곰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곰들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평생 좁은 공간에서 착취 당하며 학대받던 곰들이 구조되어 더 나은 삶을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지난 11월 17일, 인천에서 샤먼을 경유해 호찌민에 착륙했다. 무덥고 축축한 밤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이튿날, 슬리핑 버스를 타고 4시간 정도 누워서 달려 깟띠엔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내렸다. 관계자와 통화가 되지 않아 길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던 오토바이꾼에게 넘어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고 온몸이 젖는 가운데 마음은 들떴다. 중간 마을에 내리자 개들이 무심히 반기며 다가온다. 주민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바로 앞에 황토빛 강물이 콸콸콸 흐르고 한국에서 왔음직한 제비 수십 마리가 낮게 날고 있었다.
숙소에서 바라본 생츄어리. 강이 가로지르고 있다.
강 맞은 편 산 속 깊은 곳에 곰 생츄어리가 있다고 한다. 밤이 되자 서늘한 적막을 깨는 '깻 공- 깻 공- (점점 낮아지고 작아지는 음색으로)' 게코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숙소 앞에는 두꺼비가, 안에는 개구리가 돌아다니며 불빛에 모여든 벌레를 낼름낼름 흡입한다.
그렇게 각종 동물들과 한 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동틀 무렵 우주의 소음 같은 희한한 소리에 불현듯 잠에서 깼다. 새 울음소리인 줄 알았는데 긴팔원숭이들의 떼창이란다. 한참을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신나서 동행과 같이 떼창을 했다. 마치 우리가 긴팔원숭이가 된 것 같았다.
깟띠엔 국립공원의 긴팔원숭이들
프리 더 베어스 베트남, 캄보디아 총괄인 네브와 베트남 담당자인 욤이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배를 타고 5분 정도 강을 건너 닿은 곳에 국립공원 사무실이 있었다. 근처에 2008년 처음에 지은 시설이 있고, 2017년에 새로 지은 시설은 그곳에서 더 들어간다. 오토바이를 타고 한참을 달려 베어하우스에 도착했다.
곰 키퍼들이 숲속 여기저기에 던져준 아침식사를 찾느라 곰들은 분주해 보였다. 펜스 너머의 태양곰 한 마리가 우리에게 점점 다가온다.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조금은 긴장되었다. 그는 킁킁대며 엉거주춤 일어서서 우리와 눈을 맞추다가 자기 할 일을 하러 갔다. 우리도 각종 시설을 꼼꼼하게 둘러보며 설명을 들었다.
새로 지은 시설은 친환경적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태양광과 축전지로 펜스에 24시간 전기를 공급하고, 식물로 그늘을 만들어 온도를 조절하고, 상수와 배수 시설을 갖춘 상태에서 지하수를 끌어 쓰고, 돌을 채워 넣은 철조망으로 벽을 세워 바람을 통하게 한다.
곰들이 내실에 있는 동안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작은 정원도 만들어 두는 등 곰에게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역력했다. 사다리를 타고 옥상에 올라가니 사방으로 방사장을 볼 수 있었다.
친환경적으로 지어진 베어하우스 내부
방사장은 누전 방지를 위해 풀이 제거된 펜스 주변을 제외하면 숲이 우거져 있어 자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최대한 환경을 유지하며 방사장을 꾸몄다. 곰이 작정하고 어딘가에 숨으면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먹이를 먹으러 나오기는 하겠지만.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 이곳은 곰이 자유롭게 하우스와 방사장을 드나들 수 있다는데, 혹시 숲에서 겨울잠을 자는 개체도 있지 않을까. 반달가슴곰 가운데 먹이를 줄이지 않아도 겨울잠을 기억하고 일주일씩 숙면하는 개체들도 있다고 한다. 곰이 겨울잠을 기억한다는 말이 마음에 계속 맴돌았다.
편안한 포즈로 먹이활동 중인 반달가슴곰
다음 베어하우스로 이동하는 길. 숲길을 걷는데 갑자기 발가락 사이에 뭔가가 꿈틀거린다. 신발을 벗었더니 시커먼 뭔가가 붙어 있다. 거머리다. 핏줄이 지나가는 부위에 빨판을 흡착하고 피를 쪽쪽 빨아대고 있는 것을 실제로 보니 놀라웠다.
손가락으로 떼어내려 했으나 이번엔 손가락에 빨판을 붙인다. 동그랗게 비벼말아 땅바닥에 던졌더니 자벌레처럼 기어서 마구 달려온다. 다른 거머리들도 부리나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마치 좀비 떼의 습격을 받는 기분. 빨리지 않으려면 빠르게 이동하자. 찰거머리라는 단어가 왜 생겼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루종일 들러붙었던 거머리. 피를 먹고 빵빵해진 모습.
베어하우스 담벼락을 기어올라 옥상에 올랐다. 그곳에서 바라본 방사장은 끝이 어딘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저 멀리 숲 속에 곰을 위해 지어놓은 나무 구조물이 보였다. 수영장, 데크, 드럼통 등 최소한의 행동풍부화 시설이 있고 나머지는 다 자연적인 느낌이었다.
곰들은 각자 풀을 뜯거나 간식을 찾거나 수영을 하거나 그늘에 늘어지게 누워 있었다. 대체로 편안해 보였지만 그 중에 한 마리가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정형행동을 시작하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베어하우스 옥상에서 바라본 숲이 우거진 방사장
이곳의 곰들은 구조된 후에 계류장에서 질병검사와 적응훈련을 한 뒤, 천천히 합사훈련을 받는다. 철저한 식단 관리와 행동풍부화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서서히 회복하지만 계속 정형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십수년간 갇혀 있던 곳보다 훨씬 넓은 생츄어리에 살면서도 여전히 머리를 흔드는 곰에게서 아픈 과거가 보였다. 사실 야생에 돌아갈 수 없기에 지금도 커다란 울타리에 갇혀 있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가 좀 더 평안해지기를. 이곳에서 남은 생을 잘 살다 가기를 바랐다.
베어하우스 그늘에서 늘어지게 자는 곰들
곰을 관찰하다가 문득, 키퍼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시설과 식단을 관리하고, 곰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고, 어떻게 해야 곰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꾸준히 연구하고,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침착하게 대처해야 한다.
한국에 곰 생츄어리가 생기고 구조된 사육곰이 들어온다면,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생츄어리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머리 속에 구체적인 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거머리에게 뜯긴 흔적. 다음부터는 양말을 신자.
갑자기 또 발가락 사이가 간지러워 신을 벗으니 거머리 넷이 여기저기 붙어서 신나게 피를 빨고 있다. 별 느낌도 없고 떼어내는 것이 더 귀찮았던 나는 그들을 발가락 사이에 끼운 채로 걸었는데 그러다보니 그들이 뭉개져 죽거나 떨어져나간 자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실컷 피를 먹고 빵빵해진 거머리를 차마 죽일 수가 없어 손가락으로 튕겨서 보내주었다.
동행이 기지개를 켜는데 아뿔싸, 겨드랑이에 거머리가 꿈틀대고 있는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만져도 되냐고 물을 새도 없이 반사적으로 거머리를 잡아서 떼어냈다. 어떻게 거기까지. 곰들은 어떤지 궁금해서 욤에게 물어보니, 곰 피부가 두꺼워서 거머리가 붙지는 않는다고 한다.
숲을 그대로 유지한 방사장
새로 짓고 있는 시설도 둘러보았다. 네브에게 물어보니, 드론을 띄워 지형을 정찰한 뒤 GPS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건물을 세울 곳과 울타리를 설치할 곳의 나무 정도만 최소한으로 베어낸다고 한다. 곰 생츄어리를 조성할 때 이런 요소를 모두 고려하여 환경파괴를 최소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밀어버리고 나무를 다시 심는 식의 방법은 채택하지 않으리라.
생츄어리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물었더니 베트남 정부가 프리 더 베어스와 계약하여 땅을 무료로 임대해주고, 단체는 일정 기간 프로젝트를 맡아서 운영한다고 했다. 정부가 점점 협조적이 되었고, 곰을 구조하러 갈 때 같이 가서 압수해 준다고 한다. 한없이 부러워졌다.
서로 가까워진 곰들. 편안히 지내고 있었다.
한국은 1981년에 정부가 잘못 시작한 일을 여태껏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결자해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사육곰이 모두 중성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죽을 때까지 좁은 우리에 갇혀서 사는 것이 과연 사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생츄어리가 생기지 않는 이상 전수 안락사하고 곰 농장을 종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치적 부담의 문제로 안락사가 어려운 모양이다.
이렇게 인간들이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는 사이에 곰들은 실질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생츄어리를 만들어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사는 것처럼 살게 해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지.
베트남 정부와 프리 더 베어스의 협업을 보면서, 생츄어리에 살고 있는 곰들의 비교적 편안한 상태를 보면서, 답사 전에 반신반의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생츄어리가 생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무조건적인 안락사가 답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영원 같은 고통 속에 살던 곰들이 철창을 벗어나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